권위주의 알레르기와 민주주의 바이러스

한국과 일본을 거의 매주 오가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인천공항에 내려서 서울로 들어오자마자 내게 비염 증상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비염은 아주 어릴 때부터 늘 나와 함께 했던 증상이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만, 한국에서 콧물을 흘리며 지내다가 일본으로 돌아오면 하루만에 그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공기가 좀 나빠서 그런가 보다, 한국에선 무리하며 일하니까 몸이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어느날 누군가가 “알레르기”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한국에서만 지내와서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사실은 한국의 어떤 공기 성분에 대한 “알레르기”가 내게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제가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레르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을 그런 알레르기요. ( 물론 현재 서울의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일지도 모릅니다 )

환경이 바뀌어서야 추측이라도 해 보았을 이런 “알레르기”처럼 기존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나의 또 다른 “알레르기”를 최근에 하나 더 발견한게 있습니다. 바로 “권위주의”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인데요. 그냥 ‘모두가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팀이 중요하고 더 효율이 높다’의 원칙 정도로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 자신도 느끼기 전에 권위적인 상황을 극도로 경계하며 만약 그런 유사한 상황이란 판단이 들면 어떻게든 해결하거나 벗어나려 한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 교회를 다닐 때에도 그랬습니다. 제사는 성도들이 신에게 올리는 것이며, 메시지는 신으로부터 성도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는게 원칙인 것 같은데, 제사장을 자칭하는 목사나 전도사, 리더들이 성도들의 고통을 신에게 더 잘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 않거나, 성도들에게 리더로서의 자신들의 주장과 인격을 섬기게 하려고 할 때 지켜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분들이 설명하는 예수가 희생한 까닭과 전적으로 배치되는 것 같은 상황이기도 했죠. 저로서는 그 분들의 역할이 전달자이자 매개자, 촉진자라고 생각했기에 그 상황이 불편했고, 한편으로는 지나치다시피 예민해 하는 나 자신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후 교회를 떠나 몸 담았던 조직들, 운영하는 회사에서도 비슷한 문제 상황은 반복되었습니다. 하려던 일은 “미디어, 커뮤니티, 사회 혁신” 등이었는데, 내부를 들여다 보면 권위가 한두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고 구성원들이 조직을 신뢰하며 자발적으로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는 조직을 만드는데 나는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Daum에서 기획자로 역할을 옮긴 이유는 미디어와 커뮤니티와 관련된 업무를 모두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기획자가 되지 않으면 팀 내의 기획자와 개발자, 디자이너 간의 역할 균형을 바로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는 대표에게 쏠리는 권한이나 책임을 구성원들이 버거워 하더라도 나누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았습니다. 회사가 개발자 집단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를 찾고 맺으려고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무조건 민주주의가 옳거나 늘 효과적이진 않다고 인정합니다만, 돌이켜 보면 저는 제가 처하는 환경을 민주적으로 협력이 가능한 환경으로 바꾸는 일부터 늘 해 왔습니다. 때로는 나의 과잉 반응이 좋은 리더도 나쁘게 비판하고 불편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민주적 협력을 위한 시스템과 문화”가 당연한 것이니 무의식적으로 혹은 강박적으로 내가 있는 곳 어디나 나와 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적용하고 평가하려 했을 겁니다. 마치 화성을 지구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테라포밍 하듯이요. 일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가장 먼저 하곤 했던 작업으로 “민주적 협력 환경”을 만들려 했지만, 실제로는 이 조건이 물고기에게 물이 필요한 것처럼 저에겐 너무나도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던 겁니다.

지금 하고 있는 빠띠우주당도 그 흐름과 이어집니다. 저는 빠띠를 통해 더 많은 조직들이 민주적으로 협업하는 걸 경험하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우주당을 통해서는 시민들과 정치인들이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려 하고, 사회 전체가 서로 협력하는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래야만 의미가 있는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현실 정치 이전에 민주주의 시스템과 문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었나 봅니다.

분명히 저는 어떤 일이든 함께 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민주적으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협력 관계를 우선 만드는데 집중하거나, 그런 협력 관계가 가능한지를 먼저 살피는게 분명합니다. 사회와 개인, 조직과 개인도 그런 관계를 더 맺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옳든 그르든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일을 하게 될 겁니다.일의 성과와 상관없이 “민주주의”와 “민주적 협력 문화와 관계”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게 나의 정체성 중의 하나입니다.

왜 그런 정체성을 갖게 되었는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습니다만, 아무튼 지금은 “민주적 협력 관계에 대한 강박”이란 정체성을 인정하고 일을 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게 나 스스로의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주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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